역사를 만들어온 그들은 어떤 유토피아를 꿈꾸었는가
이 책에서 말하는 모더니티는 일반적으로 합리성에 기반한 근대화를 지칭할 때 쓰이는 ‘모더니즘’과는 다르다. 여기에서 모더니티란 한 사회가 상상하고 지향하는 미래상이다. 모더니티를 표현할 적절한 용어는 없었으나 개념은 분명했던 고대 시대부터, 발자크에 의해 “모더니티”라는 표현이 처음 쓰였던 19세기를 지나, 컨템퍼러리에 의해 모던이 대체된 현재까지 아탈리는 모더니티의 어원과 의미의 변화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다양한 문명권과 언어권에서 모더니티가 지녀온 다양한 의미의 굽이를 따라간다는 것은 적재적소에서 인간의 삶을 조건 지어온 비밀들을 찾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는 각각의 인간 집단이 주어진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신에게 해가 되는 것은 애써 물리치고, 자신이 꿈꾸는 유토피아에 어울리는 것은 한껏 고양시키며 기어이 이루고 싶었던 것을 생각해온 방식을 구별해보는 것이다. 또한 그것으로부터 가치관, 이상향, 미학적 관점, 분노를 일으키는 주제들, 진보의 개념, 경제 구조, 기업관, 정치체제, 풍습 등의 변화를 추론하는 것이기도 하다.”(서문 중에서)
모더니티는 한 사회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미래상이기에 지금껏 정치적, 예술적, 윤리적 투쟁의 목표가 되어왔다. 투쟁의 주체는 시대와 불화하고 다른 유토피아를 주장함으로써 역사의 변곡점을 만들어왔던 위대한 인물들이다. 가령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회의 칼 끝이 매서웠던 신앙 지향적 모더니티의 시대에 이성으로 세계를 인식하려 했던 그리스 철학을 복권시켰다. 오귀스트 콩트는 인간은 자연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신을 발명한 것뿐, 진리는 과학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며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의 시대를 선언했다. 반면 니체는 이성과 과학의 시대가 창의성을 파괴하는 집단본능을 주입했고 그런 시대에 더 나은 미래란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포스트 모더니티 시대를 예고했다. 그리고 지금, 미래 따위는 아무래도 좋은 컨템퍼러리 시대에는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가 또 다른 형태로 돌아와 모든 속박과 계약으로부터 해방을 외치는 예술이 넘쳐난다. 1961년 피에로 만초니는 말 그대로 ‘예술가의 똥’을 30그램씩 통조림 깡통에 담아 팔았다.
모더니티의 세계관으로 인류사를 꿰어낸 지식의 향연!
이처럼 아탈리가 좇는 모더니티 역사 탐험에 동참하는 것은 ‘세상을 바꾼 인물들’이 역사의 맥락에서 왜, 어떤 중요성을 지니는지를 명확히 알게 되는 지적 즐거움을 제공한다. 정치, 경제, 철학, 예술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방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아탈리는 미래를 직조해온 인물들과 그들의 저작들, 작품들을 시대를 초월해 연결하고 모더니티라는 인류 진보의 궤적 아래 정렬한다.
자연스레 그들이 주장한 유토피아들이 한데 뭉치고 세력화되어 역사적 사건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가령 신구논쟁은 단순히 학구적 차원의 논쟁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 지지자 대 교회 옹호 세력의 갈등을 통해 이성 지향적 모더니티를 촉발시킨 계기였고, 프랑스혁명은 최초로 각각 이성과 신앙에 기반을 둔 좌파와 우파를 탄생시켰으며, 미국독립혁명은 유럽에서 6세기 동안이나 온갖 고초 속에 구축되어오던 정치적 모더니티의 실현이었다.
역사 속 모더니티를 되짚는 일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삶과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향할 것인지를 도출하기 위해서다. 어떤 윤리적, 철학적 비전도 격변하는 기술의 진보를 따라잡지 못하는 시대에 인류는 과연 불멸을 향한 욕망을 달성할 것인가? 어느 때보다도 불확실성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는 길은 정녕 파멸을 향하고 있지는 않은가? 미래의 우리가 무엇을 이상향으로 두고 살아갈지를 지금 예측하는 것. 즉 모더니티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에 그 답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미래에는 남들이 자기와 같은 네트워크에 참여해주어야 나에게 이익이 돌아온다는 점을 점점 더 뼈저리게 실감할 것이다. 행복은 자기가 소유한 물건의 수보다 자기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의 수에 좌우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타인들, 특히 미래 세대들이 전염병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어야 하며, 그들이 시장에 나온 상품을 구입할 수 있으려면 가난하지 않아야 할 것이며, 네트워크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하고, 소통을 위해 동일한 수준의 노마드 기기를 사용할 수 있어야 모두에게 유리해질 것이다.
참고자료: Histoire de la modernit?,인류는 어떻게 진보하는가, 미래를 상상하는 방법, 모더니티. 자크 아탈리
한창호 기자 che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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