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 한남4구역의 경쟁입찰이 성사된 가운데 현대건설이 제안한 설계안을 놓고 업계에서 엇갈리는 평가가 나온다.
한남4구역 재개발 사업은 서울 용산구 보광동 16만258㎡ 부지에 지하 7층~지상 22층 51개동, 총 2331가구 규모 아파트를 짓는 사업이다. 공사비만 1조5723억원에 달한다. 이 같은 대규모 공사의 시공권을 두고 시공능력 평가 선두를 달리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17년 만에 맞붙었다.
두 회사는 단지 전체 디자인과 단지명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삼성물산은 ‘래미안’을, 현대건설은 ‘디에치한강’이라는 단지명을 제안했다.
설계안과 관련해서 삼성물산은 글로벌 설계사 ‘유엔스튜디오’와 협업해 모든 조합원 세대가 한강을 조망할 수 있는 설계안을 냈다. 현대건설은 세계적 건축사무소 자하 하디드 아키텍츠와 협업해 ‘곡선’의 미학을 살려 조합원 세대가 한강과 남산 등을 내다볼 수 있도록 했다.
두 회사 모두 특화된 장점을 내세운 상황에서 현대건설의 핵심 디자인이 한남3구역에 제안한 설계안을 떠올린다는 얘기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 한남3구역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에서 현대건설은 한강 물결과 남산을 연상시키는 웨이브 디자인을 도입했다. 구릉지 경사지를 이용해 옥외 조망권을 확보한 테라스하우스도 선보였다. 웨이브 형태로 건물 옥상이 연결된 점과 각 층에 단차를 줘 만든 테라스하우스는 여타 단지와 구별되는 한남3구역만의 특화 설계다.
현대건설은 지난 18일 한남4구역 조합에 전달한 입찰제안서에서 건물 옥상을 웨이브 형태로 연결하고 일부 동에 단차를 준 설계를 제시했다. 이에 대해 정비업계 전문가는 “설계는 ‘도시정비사업의 꽃’이라 불릴 만큼 시공사에서 가장 큰 의미를 두고 공을 들이는 작업”이라며 “현대건설이 한남4구역 입찰제안서에서 보여준 설계는 한남3구역에서 차별화 포인트로 삼은 디자인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없지 않다”이라고 했다.
설계를 맡은 자하 하디드는 2004년 여성 최초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로, 곡선미를 강조한 설계로 이름을 날렸다. 현대건설 측에 따르면, 한강의 물결과 남산 능선을 형상화한 곡선 디자인이다. 기존 아파트와 달리 8만8000장의 곡선형 알루미늄 패널을 건물 외관에 붙일 예정이라고 한다. 아울러 조망 극대화 설계를 통해 조합원 모두에게 프리미엄 조망을 제공하고 한강은 물론 남산과 용산공원까지 품어 한강변의 새로운 랜드마크를 건설하겠다는 게 현대건설의 목표다.
하지만 조합 일각에서는 “한남3구역의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을 차용한 현대건설이 무성의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과거 미흡한 설계를 제안해 조합원들로부터 외면을 받은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지난 2022년 한남2구역에서 L건설이 제출한 혁신설계안이 ‘디자인 표절’ 논란을 겪으며 조합원들은 결국 대우건설을 선택했다. 해당 건설사가 한남2구역을 위해 제안한 혁신설계안의 ‘스카이 커뮤니티’ 외관이 김포 북변4구역 재개발사업지의 조감도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수주전에서 P건설사는 조합 설계사무소의 원안설계안을 그대로 반영했다가 소유주들의 버림을 받았다. 해당 건설사는 ‘오티에르만의 특별한 설계’를 이용한 고급화 전략을 내세웠지만, 실상은 여의도 한양아파트 재건축 설계사로 선정된 해안건축이 원안설계에 제안한 내용과 상당 부분 유사했다.
◇ ‘한강’은 서울, 경기 등 한강을 접하는 수도권 모든 지역에서 아파트 단지명에 흔히 사용하는 단어
한편 단지명과 관련해 현대건설이 내세운 단지명 ‘디에이치 한강’에도 일각에서는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한강’은 서울시는 물론 경기도 김포시, 남양주시 등 한강을 접하고 있는 수도권 모든 지역에서 단지명에 흔히 사용하는 단어다. 1980년대 준공된 아파트 단지들에서도 ‘한강’을 사용했다. 이 때문에 ‘디에이치 한강’이라는 이름은 명칭 브랜드 측면에서 무색 무취의 느낌을 준다는 평가다.
한 도시정비업계 전문가는 “통상 수주전에서 설계와 단지명은 해당 사업지에 참전하는 시공사의 정성과 관심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지표”라며 “랜드마크에 대한 수요가 높은 단지일수록 설계가 시공사 선정에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김성태 마켓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