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개의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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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개의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TV 대표
  • 승인 2024.05.2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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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비록 나라는 작지만 임금은 백성을 사랑하고 신하는 나라에 충성하며 아래 사람은 윗사람 모시기를 부형과 같이 하므로 함부로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진=한국고대사료DB

“개는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개의 다리를 밟으면 물어야 합니다.”
 
김유신이나 삼국통일을 부정하는 것은 영국 사람들이 1066년 잉글랜드를 정복, 대영제국의 토대를 만든 노르만 공국 윌리엄을 매도하는 것이나 미국인이 영국군 장교 출신이라고 워싱턴 장군을 친영파라고 욕하는 것과 같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그 나라엔 없다. 

한국인이 신라의 삼국통일과 김유신을 부정하는 것은 민족사의 가장 영광된 스토리를 말살하여 스스로를 난쟁이, 비겁자로 만드는 反교육적 행태이기도 하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은 영감(靈感), 상상력, 용기, 비전을 후손들에게 선물한다. 역사는 인간과 조직의 수준을 높이는 정신적 자산이 된다. 소년 때 이순신 나폴레옹 전기(傳記)를 읽고 감동했던 박정희가 두 위인을 닮은 사람이 되어 인류공영에 이바지한 사례가 역사의 힘을 보여준다.

작년 봄, 윤석열 대통령이 대만 문제를 무력으로 해결하는 데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자 중국 정부는 “주둥이 닥쳐”라고 했다. 불용치훼(不容置喙). 이럴 때 김유신을 아는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물을 것이다. 자주의 화신 김유신이라면 뭐라고 반박했을까? 아마도 “물어!(咬之·교지)”라고 했을 것이다.

서기 660년 신라 태종무열왕 시절, 황산벌 싸움에서 백제 결사대를 무찌른 김유신의 신라군은 먼저 온 당군(唐軍)과 합류하기 위하여 당(唐)의 진영에 이르렀다. 당장 소정방(唐將 蘇定方)은 신라군이 늦게 왔다고 신라 장수 김문영을 목 베려 했다. 김유신이 격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한다(三國史記 新羅本紀).

“대장군이 황산의 싸움을 보지 못하고 늦게 왔다고 죄를 주려는 것인데, 나는 결코 죄 없이 욕을 당할 순 없다. 반드시 먼저 당군과 싸워 결판을 지은 다음 백제를 부수겠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5 태종무열왕 중 관련 대목에는, 그렇게 말하는 김유신을 이렇게 묘사했다.

<김유신이 큰 도끼를 잡고 군문(軍門)에 섰는데, 그의 성난 머리털이 곧추 서고 허리에 찬 보검이 저절로 칼집에서 튀어나왔다.>

이를 본 소정방의 부장(副將)이 겁을 먹고 발을 구르며 말하기를 “신라 군사가 장차 변하려 합니다”고 하니 소정방은 김문영의 죄를 풀어주었다.

삼국사기 열전 김유신전(傳)에는 그 뒤의 일을 이렇게 적었다.

당나라 사람이 백제를 멸한 뒤 사비의 언덕에 군영을 만들어 신라 침략을 음모하였다. 무열왕이 알고 여러 신하를 불러 계책을 물었다. 다미공이 나아가 말하기를 “우리 백성을 거짓 백제의 사람으로 만들어 그 의복을 입히고 도둑질을 하려는 것처럼 하면 당의 사람들이 반드시 공격할 것이니 그때 더불어 싸우면 뜻을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김유신이 말하기를 “그 말도 취할 만하니 따르십시오”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당나라 군사가 우리의 적을 멸해주었는데 도리어 함께 싸운다면 하늘이 우리를 도와주겠나.”

김유신이 말하기를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움을 당하여 자신을 구원하지 않겠습니까. 청컨대 대왕께서는 허락하여 주십시오”라고 했다.

당의 첩자는 신라가 대비하고 있음을 알고 백제왕, 신료 93명, 군사 2만 명을 사로잡아 돌아갔다. 소정방이 포로를 바치니 당의 고종(高宗)은 위로한 뒤 “어찌 신라마저 치지 않았는가”라고 물었다. 소정방은 이렇게 말했다.
“신라는 그 임금이 어질고 백성을 사랑하며 그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섬기기를 부형(父兄) 섬기듯 하니 비록 작지만 도모할 수가 없었습니다.”
당(唐)의 대표 명장이 신라에 바친 최고의 찬사라 할 만하다.
  
신라 사람들의 합리성과 신채호의 혼돈

“개는 그 주인을 두려워하지만 주인이 그 다리를 밟으면 무는 법입니다. 어찌 어려움을 당하여 자신을 구원하지 않겠습니까(犬畏其主 而主踏其脚則咬之, 豈可遇難而不自救乎)”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상대로 하여 자주를 지키는 정신을 실감나게 표현한 명문(名文)이다. 특히 “자구(自救)”라는 단어가 흥미롭다. 

“신하가 충성으로 나라를 섬기고”라는 표현도 남다르다. 신라의 신하가 섬기는 대상은 임금보다 상위 개념인 나라(國)이다. 요사이 문법으로 말한다면 정권이 아닌 헌법에 대한 충성이다. 7세기 신라 지도층의 합리적(근대적) 국가관을 엿볼 수 있다. 신채호의 정리되지 않는 민족관은 국가의 존재이유에 대한 무지(無知)에서 나온 것이고 신라 지도층의 합리성은 전쟁을 통하여 국가의 소중함을 실감한 덕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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