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칼럼] ‘하면 안 되는 일’을 하지 않을 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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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칼럼] ‘하면 안 되는 일’을 하지 않을 각오 
  • 이근미 작가
  • 승인 2023.10.30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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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레드카펫이 아닌 경찰서 포토라인에 선 이선균의 모습을 보고 비난보다 배신감과 안타까움에 마음 아픈 사람이 더 많았을 듯하다.

이선균의 경찰서 출두 생중계를 3년 만에 찾은 찜질방에서 시청했다. 여성전용이라 아줌마들이 많았는데 다들  “왜 저랬대”, “답답하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속이야 알 수 없지만 그동안 별 잡음없이 연기에 충실했기 때문이리라. 아내인 배우 전혜진과 두 자녀에 대한 안타까움도 크게 작용했을 듯 싶다.

“기자들 많이 왔네.”
내가 혼잣말을 하자 옆에 있던 아줌마가 “당연하지, 톱톱톱스탄데”라고 했다. 
그 말에 나도 아줌마들 틈에서 한마디 보탰다. 
“맞아요. 저 자리에 올라서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걸 한순간에 까먹다니.”

인터뷰어로 사회 각 분야 사람을 두루두루 만나면서 ‘정상에 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절실히 실감했다.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사고로 열심히 자신을 북돋우며 달리고 달려도 그 자리에 설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적다.

그 어려운 걸 해낸 이후 진짜 매진해야 할 일은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방법은 하나, ‘절대 하면 안 되는 일을 안 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절대 안 할 용기보다 절대 안 들킬 것이라는 만용이 더 팽창하면 일은 벌어진다. 금단의 열매에 손을 대고 나면 그 어떤 핑계도 먹히지 않는다. '아담아, 너 어디 있느냐'라는 음성은 기어코 들려오니까.

최정상에 서니 허무하더라, 지켜야 한다는 무게감이 짓눌렀다, 대개 이런 핑계를 내놓는데 이제 좀 식상하다. 솔직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 정답일 것이다. ‘눈에 뵈는 게 없는 순간’이 도래했고 한없이 으스댄 결과가 나온 것일뿐. 정상에 서보니 나른하고, 모든 게 발 아래로 보이는 왕국은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하겠지. 남은 건 ‘절대 하면 안되는 일’을 저질러 버린 오만에 대해 책임지는 일이다.  

사진=TV조선 유튜브 채널

아카데미 시상식장에서 환호를 터트리던 이선균이 경찰서 마당에서 무표정하고 침울한 얼굴로 몇 번이나 고개 숙이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은 정말이지 힘들었다. 
“어떡 할 거야. 이제.”
찜질방 아줌마들의 탄식대로 정말 어떡할 건지... 사람들에게 단체로 고구마 100개씩 안긴 벌을 어떻게 받을 건지...

이선균이 마약에 연루되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나의 아저씨 어떻게 봐''나의 아저씨를 잃을 수 없어'라는 댓글이 많이 보였다. ‘나의 아저씨’ 본방송을 못 본 나는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 ‘나의 아저씨’가 여러차례 등장한 걸 계기로 보게 되었다. '대체 어떤 내용이길래 설교에 인용하나' 하는 마음에 넷플릭스를 연결했다가 16화까지 순식간에 섭렵했다.

아이유의 아저씨 이선균도 좋지만, 삼형제의 우애, 삼형제와 어울리는 친구들, 가슴 저미는 에피소드까지 한 회 한 회 다 명작이었다. 요즘도 케이블TV에서 ‘나의 아저씨’를 종종 재방송하는데 그때마다 또 넋을 잃고 보곤 했다.

배우들은 그가 맡은 드라마의 역할로 사람들의 가슴에 각인된다. 오래 전 ‘겨울연가’ 배용준이 일본 아줌마의 ‘욘사마’가 된 계기를 취재하느라 NHK에 간 적이 있다. 그쪽 PD에게 “한국에 배용준 말고도 잘생긴 배우들 많다”고 말하자 그 PD가 그랬다. “일본 아줌마들은 잘생긴 한국 배우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겨울연가’의 준상이를 좋아하는 거다.”

'나의 아저씨'로 많은 사람의 가슴에 각인된 이선균은 어쩌자고 그들과 내 가슴에 대못을 박는지 모르겠다. ‘절대 하지 않아야 할 일’을 목숨으로 지켜냈더라면 좋았을 텐데. 대중의 가슴을 파고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각오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건만.

지드래곤도 오르내리고 있는데 본인이 부인한다는 기사의 댓글에 '제발 아니길 바란다'는 내용이 많았다. 지드래곤이 만든 주옥같은 노래는 다 어쩔 것인가. 대중가요 별로 안 좋아하는 나는 하필 지드래곤의 팬이기도 하다. 이선균이 마약 시약 검사에서 음성이 나오고 진술을 거부했다니, 이선균도 지드래곤도 제발 아니면 좋겠구만.

“연예인 걱정은 하는 게 아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이다.”

이런 말들이 유난히 다가오는 계절이다. 날씨도 추워지는데 '나의 아저씨' 때문에 더 추워지는 느낌이다. '뱅뱅뱅 빵야빵야빵야'로 다 날려버리고 싶지만 그 노래도 부를 기분이 아니니 어쩔.

   

이근미  문화일보로 등단 
장편소설 《17세》《어쩌면 후르츠 캔디》《서른아홉 아빠애인 열다섯 아빠딸》《나의 아름다운 첫학기》 비소설《+1%로 승부하라》《프리랜서처럼 일하라》《대한민국 최고들은 왜 잘하는 것에 미쳤을까》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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