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원 연예부 기자]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 곽신애 대표가 한국 영화사에 새로운 족적을 남기고 있는 영화 ‘기생충’과 행보를 함께 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제72회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올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 장편 영화상 등 총 4개 부문에서 수상하며 최다 수상의 영광을 차지했다. 기록의 연속이며, 기쁨의 연속이다.
아카데미 4관왕의 기쁨을 다 누리기도 전에 국내로 돌아와 그 누구보다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기생충’ 팀의 곽신애 대표가 국내 기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감독과 배우를 제외하고 제작사 대표가 이처럼 범국민적인 관심을 받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오찬도 나눴다. 곽신애 대표는 오찬 메뉴로 ‘기생충’에도 나왔던 ‘짜파구리’를 언급했다.
“오찬 메뉴 중에 짜파구리가 나왔다. 영부인이 ‘저도 계획이 있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대파를 많이 넣은 짜파구리를 시도하셨다. 작년에 대파가 잘 자랐는데 출하가 어려운 상황이라 촉진 차원에서 준비한 것이었다. ‘기생충’ 촬영 때도 먹어서 멤버들도 익숙한 메뉴인데, 오늘 게 가장 맛있다 했다. 나는 짜파구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이번에 먹어보니까 담백하니 정말 맛있었다.”
오찬 자리는 순수 축하 자리였기에 특별한 정책 이슈나 토론은 없었지만, 지자체들은 ‘기생충’ 특수효과를 노리고 열심히 숟가락을 얹고 있다. 곽 대표의 생각을 들어봤다.
“(지자체 쪽에서) ‘기생충’ 촬영지에 대해서 진지하게 온 연락은 없었다. 우리 쪽에서는 비용과 유지보수 차원에서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기획안을 보고 판단하겠지만, 그 계획이 절대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 많은 영화, 드라마 세트가 만들어졌는데,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시작했다가 골치 아프게 끝난 경우가 많다. 영화는 이벤트성으로 붐 업 되는 거니까 시간이 지나면 애물단지가 될 수 있다. 봉준호 감독님도 ‘‘기생충’은 작품 자체로 기억됐으면 좋겠다‘하셨고, 나 또한 영화 자체가 중요하다 생각한다. 아깝거나 되살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시 시간을 거슬러 지난 9일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있었던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되짚었다.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돼 그 중 작품상을 포함한 총 4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곽 대표는 이렇게 될 줄 예상했을까.
“이제까지 없었던 일이고 역사를 깨는 일이니까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냥 우리끼리 예상은 해봤었다. 멤버들은 각본상을 가장 많이 손꼽았다. 하지만 나와 송강호 선배님은 작품상을 꼽았다. 터무니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기대가 클 수는 없었다. 한편으론 관계자들이 ‘기생충’과 멤버들을 심하게 좋아하는 걸 보니까 ‘이 분위기면 안 주는 것도 이상한데?’라고 생각도 했다. 봉준호 감독님이 말만 하면 관계자들이 손뼉을 치고 웃었다. 호감이 있는 상태서 말을 하니 진짜로 좋아하는 것 같다. 감독상까지 받으니까 ‘어? 어?’ 했는데, 결국 작품상까지 받게 됐다.”
‘기생충’은 곽 대표가 제작자로서 계속 작품 활동을 이어가야 하는지 고민하던 시기에 만난 작품이다. 곽 대표의 마지막에 가까웠던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
“2016년에 제작자가 됐는데, 내가 제작자로서 작품에 민폐를 끼치고 있는지, 아닌지 판단이 잘 안 됐었다.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기생충’을 만나게 됐다. 어떤 제작자가 봉준호의 다음 작품이라는데 안 하겠나. 이것까지만 해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2017년과 2018년은 거의 올인해서 이 작품에 매달렸다. 감독님은 물론이며, 배우들과 참여한 모든 사람에게 많이 배웠다. 그 과정이 즐겁고 행복하고 많이 신이 났다. 정말 좋은 것투성이다. 이렇게 몰입해서 만들었는데, 깐느도 가고 국내 스코어도 잘 나오고 지금까지 좋게 연결되고 있다. 누군가 지금 나에게 제작자를 그만둘 생각이 있느냐 물으면 절대 아니다. ‘하는 게 맞나?’라고 생각했다가 지금은 ‘관둘 생각이 절대 없다’라고 할 수 있는 게 내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변화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곽 대표의 얼굴엔 그늘 한 점 찾아보기 어렵다. 함께 고생해서 만든 결과물이 국내를 넘어 전 세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니 당연한 일 아닌가.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국내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기생충’ 붐이 다시 일고 있다. 한국영화의 역사를 다시 쓴 ‘기생충’의 행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편 ‘기생충’은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 분)네 장남 기우(최우식 분)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이선균 분)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오는 26일에는 ‘기생충’의 진면목을 더욱 강렬하게 보여줄 ‘기생충: 흑백판’이 개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