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명예교수가 내년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단어로 ‘무역전쟁’을 꼽았다. 최 명예교수는 최근 발간된 ‘나라경제’ 12월호에서 “2025년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단어는 무역전쟁”이라며 “전 세계를 상대로 10~20%, 중국에는 60%의 관세 부과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가 다시 백악관에 복귀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트럼프의 고관세 장벽은 코로나 팬데믹의 긴 터널을 간신히 빠져나온 세계경제를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내몰 것이다. 이로 인해 1930년대 경쟁적 관세장벽 쌓아 올리기의 비극적인 종말의 그림자가 아른거린다고 최 교수는 전망했다.
최 교수는 “2017년 집권한 트럼프는 합의를 깬 최초의 이단아였다”며 “놀라운 점은 2021년 집권한 민주당의 바이든 대통령이 전임자인 공화당의 트럼프가 쌓은 중국을 겨냥한 고율의 관세를 그대로 유지했다는 것이다. 2025년 백악관으로 귀환할 트럼프는 더 전면적이고 높은 관세장벽을 예고하고 있다”고 했다.
최 교수는 “관세인상이 가져올 불확실한 경제적 효과에도 트럼프는 개의치 않을 것”이라며 “트럼프는 자신을 ‘관세에 홀린 사람(Tariff Man)’이라고 불렀고, 이번 유세 과정에서는 ‘관세는 영어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까지 했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가 국제무대에 처음 등장했던 2016년 말과 다시 권좌에 귀환하는 2024년 말의 세계 정치경제 지형은 다르다”며 “미중 패권경쟁은 트럼프 1기와 바이든을 거쳐 이제 중반전으로 치닫고 있다. 신냉전이란 단어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고 했다. 최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2020년 초 시작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노정된 공급망의 교란 속에서 중국에서 조립해 완성하는 제품에 의존하는 전략의 치명적 위험성을 경험한 미국은 서둘러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시작했다. 최 교수는 “핵심은 중국의 기술굴기 저지, 그중에서도 반도체다. 20세기 후반 조립공정을 임금이 싼 아시아로 이전하고 원천 기술과 디자인만 가지고 글로벌 공급망을 통제하던 미국은 자국 내에 조립공장을 확보해야만 패권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며 “트럼프는 보조금이란 당근 대신 관세라는 채찍으로 외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유치하고 일자리를 만든다고 장담했지만 말만 요란하고 실행은 미약한 것으로 그칠 수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에 중국은 보복관세 폭탄으로 맞대응하는 수준을 넘을 수 있다고 최 교수는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의 표밭을 집중 겨냥해 농산물에 보복관세 부과, 희토류 등 핵심 원자재 수출통제, 미국 기업과 개인에 대한 제재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불확실성은 이어지고 그 충격은 상상하기 두렵다. 경제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미국과 중국에의 무역의존도가 높은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들에 무역전쟁의 먹구름은 요란한 천둥과 번개로만 그치지 않을 듯하다”고 했다. [김영준 마켓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