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검찰이 직무상 정보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한 혐의로 현대건설과 LS증권 등 10여 곳을 압수수색한 가운데 서울 강북권 재개발의 최대어로 꼽히는 용산구 한남4구역에 도전장을 낸 현대건설의 향후 행보가 어떻게 전개될지 주목된다.
앞서 현대건설은 한남4구역 시공권을 따내기 위해 이미 수주한 한남3구역 조합에 내걸었던 ‘약속’과 관련해 해당 조합 측과 일부 신뢰관계에 틈이 생긴 상황이다. 현대건설은 뒤늦게 한남3구역 조합원 ‘달래기’에 들어갔다. 이날 도시정비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지난주 한남3구역 재개발 조합에 ‘한남4구역 수주 홍보 활동에 대한 공문’을 전달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의 공문에 대해 한남3구역의 한 조합원은 “화를 돋우기만 했다”는 평을 내놓았다. 조합원 A씨는 “현대건설이 한남4구역 수주를 원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적어도 홍보물에 한남3구역 내 계획도로를 이용하겠다는 것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기 위해서는 우리와 사전 협의를 거치는 게 최소한의 예의이자 우리에 대한 도리였다”고 했다.
현대건설은 지난달 한남4구역 조합원들에게 홍보물을 배포했는데, 한남3구역의 계획도로를 이용해 공사기간을 최소 12월 이상 단축하고, 사업비를 약 2220억원을 줄이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한남4구역은 내수재해 위험지구인 보광‧장문로변의 지반고를 높여 자연 배수를 유도해 저지대 상습 침수를 막기 위해 임시 우회도로를 설치해야 하는데, 새로운 우회도로를 짓기보다 인접한 한남3구역 내 계획도로를 이용해 시간과 비용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한남3구역 입장에서 현대건설의 ‘한남3구역 계획도로 이용 계획’이 불쾌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남3구역은 이주를 거의 마친 상황이다. 하지만 착공에 들어가기까지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 촉진계획 변경도 아직 진행단계일뿐더러 건축심의 변경, 사업시행계획 변경, 관리처분 변경 등 후속 인허가 뿐만 아니라 공사비 증액 문제도 걸림돌로 남아있다.
현대건설이 한남4구역 추가 수주에 집중하며 한남3구역 사업 관리에 등한시하자 급기야 한남3구역 한 조합원은 지난달 4일 소형 스포츠유틸리티(SUV) 차량을 운전해 서울 종로구 계동에 위치한 현대건설 정문을 들이받으며 분노를 표현하기도 했다.
한남4구역 조합원들이 현대건설의 홍보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자, 해당 조합은 서둘러 해명을 내놓았다. 우회도로 비용은 30억이면 충분하고, 이미 공사비 산출 과정에서 반영했으며 이에 따른 공사지연도 없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한남4구역 조합장은 조합원들에게 “임시우회도로 관련하여 별도의 추가적인 공사 기간 연장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따른 추가 공사비 역시 우회도로 설치를 위한 직접공사비(약 30억원) 이외에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이 금액도 우리 공사비 예가에 포함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한남3구역 내 계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임시 우회도로를 설치할 경우 최소 공사기간이 1년 이상 늘어날 것이라고 홍보한 현대건설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여기에 해당 조합장은 “최근 현대건설에서 홍보하는 공사지연 2220억원에 대한 근거는 없다”며 “향후 현대건설에게 세부내역을 입증하지 못할 경우에는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도시정비업계 일부 전문가는 “한남3구역 공사를 위해서도 필요한 계획도로를 마치 현대건설만이 한남4구역에 제공할 수 있는 엄청난 해결책인 것처럼 홍보했다”고 전했다.
◇ ‘새로운 콘셉트의 백화점’은 무엇...현대건설 제안에 헷갈리는 한남3구역 조합원들
앞서 현대건설은 한남3구역 조합에 △현대백화점 입점 △상가 7-2블록 매입 △HUG 보증수수료 공제 등의 공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실현 가능성이 줄어들면서 조합원들의 실망감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남3구역 조합원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현대백화점 입점 공약의 경우, 부지 부족과 교통영향평가 등의 문제가 불거지며 현실성이 크게 떨어졌다. 이와 관련해 현대건설은 ‘백화점에 준하는 스트리트 상가’,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새로운 컨셉의 백화점’ 등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이에 대해 한 한남3구역 조합원은 “애초에 현대백화점 입점이 안 될 거였으면 현대건설을 뽑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처음부터 백화점 입점 능력도 없었으면서, 이제와 ‘새로운 컨셉의 백화점’이라는 사족을 달아 오히려 헷갈리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조합원은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 제소를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건설은 한남3구역에 HUG 보증수수료 부담을 없애겠다고 홍보했지만, 업계에 따르면 한남3구역은 올해 자체적으로 HUG 보증수수료를 부담했다. 앞서 현대건설은 시공사 선정 당시 사업비와 이주비 모두 HUG 보증 없이 현대건설 자체 지급보증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보증수수료의 부담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한편, 일각에서는 현대건설과 관련한 논란이 지속되자 현장의 문을 걸어 잠갔던 대조1구역처럼 한남3구역도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대조1구역에서 공사비 갈등을 겪은 현대건설은 HUG 보증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사를 중단하는 카드를 꺼냈었다. 한 업계 전문가는 “국내 넘버1 주택통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있는 현대건설 윤영준 사장 입장에서는 한남4구역이 절실하겠지만 3구역과 4구역을 오가며 이간과 기만으로 분탕질 하는 건 옳지 않다”며 “사람이 사는 집을 짓는 건설사가 그곳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낙담하게 한다는 건 결국 사람을 돈벌이 수단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성태 마켓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