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의 부품은 주인의 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지구를 여덟 바퀴 도는 일주를 한다. 저자는 아이폰 홈버튼의 지문센서를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참여를 하고 재료들이 세계를 여행하는지 보여준다.
아이폰 한 대를 만들기 위한 모든 부품들의 이동거리를 합치면 38만 6천 킬로미터나 된다. 광대한 현대 세계의 공급망과 물류 움직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수치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엄청나게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운송이 역설적으로 효율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낮추기 위한 전략이라는 사실이다. 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믿을 수 없이 광대한 공급사슬망(supply chain)은 스티브 잡스가 물류 전문가인 팀 쿡을 영입해서 후계자로 애플의 CEO 자리까지 물려준 이유를 알려준다. 팀 쿡은 이 거대한 공급망을 이용해 슈퍼마켓 우유처럼 매일매일 재고를 처리한다. 이 전략이야말로 애플의 막대한 수익의 핵심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흔히 말하는 아이폰의 혁신은 제품 자체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물류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저자는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마시고, 어제 마신 탄산수 캔을 버리는 일상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서 도어투도어 세계를 발견한다. 그리고 이 일상의 물품들 역시 그의 손에 들어오기까지 이 사소한 물품들이 전 세계를 몇 바퀴씩 돌고 돌아 왔음을 깨닫게 된다. 아프리카에서 재배된 커피 원두가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머나먼 여행에서 캔의 재료인 알루미늄의 탄생과 몇 번이고 반복되는 불사조 같은 부활의 삶까지 숨겨진 역사, 지리, 경제 이야기가 숨 가쁘게 펼쳐진다.
세계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존재들
“월마트가 있는데 항구가 왜 필요한가요?” (228쪽)
저자는 도어투도어 세계의 전경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최전선에서 일하고 있는 종사자들의 삶을 깊숙이 클로즈업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광대한 세계가 실은 얼마나 우리의 일상세계와 맞닿아 있는지 깨닫게 해준다. 마법처럼 보이는 모든 물류 체계가 저절로 작동되는 것이 아니라 배의 선장, 항구의 도선사, 트럭의 운전사, 그리고 상품을 기다리는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제 역할을 함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과정 중 하나만 지체가 되어도 커다란 문제가 발생한다. 커다란 항구 파업은 나비효과처럼 피자헛에서 피자를 만들지 못하게 하고, 11월 31일에 할로윈 상품을 받게 한다. 이처럼 도어투도어 세계는 별개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단지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저자는 이를 설명하면서 새로운 도로 건설을 반대하는 한 지역주민이 한 말을 소개한다.
“월마트가 있는데 항구가 왜 필요한가요?”
이처럼 우리는 도어투도어 세계가 어떻게 우리 일상과 연결되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작년에 한국의 국적선사이자 세계 10대 선사 중 하나였던 한진해운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대마불사(大馬不死)라고 불렸던 다른 대기업과 달리 정부가 추가 지원이나 대책 없이 회사를 청산시키면서 수많은 한진 소속 선박들이 항구에 입항이 거부되거나 압류되는 사태가 잇따라 일어났다. 선박에 실린 기업들의 상품이 납기일을 맞추지 못하고, 세계 각지에서 수백 명의 선원들이 공해상에서 미아가 된 채 하염없이 사태가 해결되기만을 기다렸다. 이처럼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는 도어투도어 세계의 속성과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국가경쟁력 약화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의 삶까지 파괴할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도어투도어 세계야말로 세계 경제를 가능케 하는 엔진이기 때문이다. 도어투도어 세계에서는 문제가 우리 눈에 띄었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카마겟돈’과 ‘카마헤븐’의 사이
“속도는 유혹적입니다. 우리는 고효율을 중시해 도로를 설계합니다. 그래놓고 설계 방식을 이용한 운전자를 탓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운전자들이 그러리라는 사실을 압니다…. 이는 거리와 도로를 대하는 우리의 접근법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157쪽)
도어투도어 세계의 또 다른 한 축에는 인류를 이동시키는 교통수단이 있다. 저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일어난 ‘카마겟돈’과 ‘카마헤븐’ 현상을 통해 현재의 교통 현실을 설명하고 나아가 자동차 중심의 교통문화에 대한 비판을 가한다. 로스앤젤레스의 405번 주간 도로는 교통체증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심지어 일론 머스크는 이 도로의 교통체증에 지친 나머지 하이퍼루프 열차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마법 같은 아이디어를 탄생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405번 도로는 결국 확장 공사를 위해 임시 폐쇄를 하게 된다. 임시 폐쇄를 앞두고 언론은 ‘카마겟돈’(Carmageddon: car+armageddon)이라고 부를 정도로 호들갑을 떨었고, 시정부는 준準비상사태를 대비할 정도로 모두들 곧 일어날 종말인 교통지옥을 예상했다. 그러나 다른 우회도로가 없었음에도 임시폐쇄 후 오히려 로스앤젤레스의 교통 상황은 더 나아졌다. 매연은 일반적인 수준보다 10분의 1이나 줄고, 도시 전체의 오염물질도 25%나 줄었다. 이 역설적인 상황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저자는 차선을 폐쇄하니 정체가 심해지는 게 아니라 완화된 ‘카마헤븐’ 사건이야말로 공급 중심의 교통정책에 대한 가장 극적인 경고라고 설명한다. 무한정 도로를 늘리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동차의 도시 로스앤젤레스에서 증명된 것이다. 이처럼 교통체증으로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 낭비, 환경오염 등 여러 부작용은 다양한 이동수단에 초점을 맞춰 줄여나가야 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비판하고 있는 대상은 ‘자동차 중심의 문화’이다. 저자는 극히 드문 확률로 일어나는 항공기 사고에 호들갑을 떨면서도 매일 수많은 사람이 죽는 자동차 사고에는 무심한 우리의 인식을 질타한다. 저자는 너무나 평범했던 13일의 금요일 단 하루에 일어난 어이없는 부주의, 졸음,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는지 열거하면서 자동차 사고에 대한 우리의 근본 인식의 전환을 촉구한다. 자동차 사고로 미국에서 죽은 사람이 베트남전쟁, 한국전쟁, 이라크전쟁, 아프가니스탄전쟁, 1812년 전쟁, 독립전쟁 동안 죽은 사람보다 많다.
최근 한국에서도 잇따른 대형버스 추돌 사고로 인해 대형 차량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매일매일 타고 다니는 이 거대한 네모덩어리가 언제든지 우리의 목숨을 빼앗아갈 수 있는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비로소 상기된 것이다.
무인자동차까지 기다릴 필요 없이 현재도 전방충돌방지시스템(FCA)과 같은 기술이 이미 가능하지만 비용을 이유로 부착 의무가 없다는 사실은 우리가 도로에서 빼앗기는 많은 생명의 가치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저자는 새로운 기술도 중요하지만 이 ‘조용한 재난’에 대한 우리의 각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며, 이것이야말로 안전한 도어투도어 세계를 위한 첫 번째 조건임을 지적한다.
UPS 배송트럭은 우회전을 하지 않는다: 컨테이너에서 무인자동차까지
“자녀가 국제물류 학위를 받으면 밥을 굶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만 우리가 제대로 돌아가는 물류 체계를 물려줘야 합니다.” (25쪽)
도어투도어 세계의 전경과 인물들의 초상을 오갔던 저자의 시선은 공간 축에서 시간 축으로 이동하면서 과거에서 미래로까지 이어진다. 저자는 과거에 운항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던 선적과 하역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킨 컨테이너의 발명에서 시작해 새로운 첨단기술을 이용한 물류의 미래까지 보여준다. 배송업체 UPS는 ‘오리온’이라는 경로 최적화 프로그램을 사용해 배송 경로를 최소화시켰다. 그 결과로 나온 좌회전 금지 정책은 시간과 연료 낭비를 줄이고 사고까지 예방하는 효과를 보았다.
저자는 이런 기술 중에서도 무엇보다 가장 극적인 변화는 무인자동차의 상용화가 될 것으로 예측한다. 저자는 무인자동차는 단순히 운전을 대신해주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교통문화 전체를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라고 설명한다. 낭비에 가까운 자동차 소유 문화를 바꾸고, 교통정체를 해소하고, 수많은 인명 사고를 방지하며, 궁극적으로 우리의 이동성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차량 공유 서비스인 우버가 무인자동차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무인자동차는 만병통치약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저자가 바라본 도어투도어 세계의 미래 역시 불확실하다. 무한히 확장될 것만 같은 강력한 세계화의 척력(斥力)의 추세에 맞서는 3D프린팅 등 새로운 인력(引力)은 세상을 지금과는 또 다른 새로운 미래로 이끌 것이다.
하지만 ‘카마겟돈’과 ‘카마헤븐’이라는 중요한 갈림길에 선 우리에게 변하지 않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어떤 미래가 오더라도 도어투도어 세계는 변함없이 세상을 움직이는 중추이자 핵심으로 작동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창호 기자 che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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