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신은경 권사①] 인생이 바닥을 친 광야 시간, 유배를 자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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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신은경 권사①] 인생이 바닥을 친 광야 시간, 유배를 자처하다
  • 이근미 작가
  • 승인 2025.04.02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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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경--전 차의과학대학교 교수, 생터성경사역원 강사, 1981~1992년 KBS 뉴스 앵커
불교 가정에서 자라 모태신앙 남편 박성범 앵커 따라 크리스천이 되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이사가는 심정으로 미국으로 향해

‘아나운서’나 ‘교수’보다 ‘권사’라는 호칭이 더 익숙하다는 그녀. ‘성경 읽는 신 권사’로 유명한 신은경 권사(66세)를 만났다. 경기도 용인의 한 카페에서 함께 들어서자 MZ세대들이 사진 촬영을 요청할 정도로 여전히 ‘핫’했다.

영국에서 언론학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이후 인터뷰차 만났던 필자에게는 ‘신 박사’라는 호칭이 익숙하다. 국회의원에 출마해 한때 ‘후보님’이었고,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재직할 때는 ‘이사장’이었다. 여러 권의 책을 낸 ‘신 작가’는 요즘 성경 전문 강사로 활동하면서 ‘성경 선생님’으로 불린다.

베이비붐세대나 X세대라면 1981년부터 11년간 KBS 9시 뉴스를 진행한 ‘국민 앵커’ 신은경 아나운서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영국문화원의 지원으로 유학을 떠났다가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KBS를 퇴사, 1995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크리스천이 아니었다. 중학교 때 잠깐 교회에 드나든 적은 있으나 1년에 제사를 12번 지내는 불교 신자 어머니와 함께 절에 다녔다. 

그랬던 그녀가 크리스천이 된 건 1995년 KBS 박성범 앵커와의 결혼이 계기가 되었다. 사위가 모태 신앙인이라는 사실을 안 어머니가 “남편 종교 따라 가라”고 말해 결혼과 함께 교회에 출석하게 된 것이다. 

“장충동성결교회에 적을 두긴 했지만 당시 남편이 국회의원 출마를 준비 중이어서 중구에 있는 여러 교회를 다녔어요. 남편은 믿음이 있지만 저는 그냥 인사차 다닌 거죠. 예배에 참석했을 때 ‘쓰임 받아야 한다’는 말이 신기하게 들렸어요. ‘나는 어디에 쓰임 받나’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부활절 칸타타 내레이션을 맡았어요. 투표를 앞두고 마지막 합동 유세하는 날이 마침 부활주일이었어요. 그날 사람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인사하고 악수하면서 점수를 따야 하는데 남편이 ‘교회와의 약속은 하나님하고 한 약속이니 당신은 교회로 가요. 유세는 내가 잘 알아서 할 테니’라고 해서 저는 예배에 참석했죠.”

부활절 칸타타 내레이션을 하는 도중에 신기한 경험을 했다.
“죄 없는 예수님한테 사람들이 침 뱉고 채찍으로 때리는 내용을 읽는데 예수님이 너무 불쌍한 거예요. 내레이션을 하다가 제가 울컥했더니 교인들도 울고 저도 울고 난리가 났어요. 예수님이 부활하신 장면에서는 기뻐서 또 다같이 울었어요.”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박성범 의원이 4선이었던 정대철 의원을 꺾고 당선되었다.
“남편이 험지에서 당선되자 부활절 칸타타 생각이 나면서 하나님이 보시고 기쁘셨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우유 먹는 신앙이지만 고맙다. 그 마음 내가 받아줄게,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해주마’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후 ‘하나님 아버지’라는 호칭이 큰 감동으로 다가오면서 마음이 활짝 열렸다. 
“중학교 2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아버지’라는 호칭이 싫었어요. 우리가 뭘 잘못했길래 4남매가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되고 엄마가 고생해야 하나, 그런 생각으로 마음에 분노가 있었어요. 그때 제 인생 목표는 ‘열심히 잘 살아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려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어느 주일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했는데 마치 동굴 속에서 들리는 것 같은 울림이 있었다.

“그때 진짜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 마음속의 눈으로 바라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아버지라는 말이 너무도 간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하나님 아버지, 못난 저도 자녀 삼아 주시나요’ 그런 질문을 했고, 그 순간 저를 받아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느꼈어요. 전지전능한 하나님 아버지가 ‘사랑하는 내 딸아, 내가 너를 도와줄게’ 하셨는데도 제가 안 쳐다보고 바닥만 보고 걸어 다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좋았지요. 세상 아버지의 수준이 아니잖아요.”

16대 총선에서 낙선한 박성범 의원은 17대 때 또다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하지만 18대 때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4년마다 선거가 돌아왔는데 그게 신앙 훈련 기간이 됐어요. 그때마다 기도하고 찬양하면서 신앙이 깊어지기 시작했죠.”  

지방선거를 앞두고 음해 사건에 휘말렸다가 무죄를 받았는데도 현역 의원인 남편이 공천받지 못하자 신은경 후보가 대신 나섰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10년 이상 함께하며 정들었던 주민들이 저를 찍어주지 않자 ‘세상이 나를 거절했다, 사람들이 나를 거부했다’는 생각에 휩싸이게 되었어요. 제 인생이 바닥을 친 광야의 시간이었지요. 남편도 저도 괴로우니까 서로 위로가 못 되고, 외부 사람도 만나지 않는 유배 아닌 유배 생활을 했어요. 중학교 1학년이 된 딸을 공부시킬 겸 해서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갔어요. 아예 이사 가는 심정이었죠.”

미시간주에서 지내며 미국교회도 나가고 한인교회에도 출석하다가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당시 《어? 성경이 읽어지네!》라는 책이 대단한 붐이었어요. 그 책을 쓴 이애실 사모님의 남편 목사님이 미국 벧엘교회에서 목회했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대단히 유명했죠. 친구가 그 책 얘기를 하는 거예요. 2007년에 한나라당 의원 부인 20여 명과 함께 두 달 정도 이애실 사모님에게 성경을 배운 적 있어요. 친구한테 저자 직강을 들었다고 하니까 전도하려는 젊은 엄마 두 명에게 성경을 가르치라고 권유했어요. 그럴 실력은 안 된다고 했는데도 친구가 배운 그대로 해주면 된다면서 자꾸 부탁하는 거예요.”  (2편에 계속) [이근미 작가]

*<신앙계> 4월호 기사를 재수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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