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미 칼럼] 노벨문학상이 만만하니?

2024-10-17     이근미 작가

지인들에게 나의 신간 장편소설 《나의 로스앤젤레스》 소식을 알리자 다들 비슷한 답장을 보내왔다. ‘노벨문학상 감인데’, ‘다음에는 이 작가가 노벨문학상 받아야지’ 등등. 나의 그들에게 ‘노벨문학상이 만만하니?’라는 답장을 보냈다. 

10월 10일 저녁 8시,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는 사우스 코리아 한강!”이라고 발표했을 때 그 누구보다 문인들이 놀랐을 것이다. 우리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는 점과 한강 작가가 받았다는 점에서. 한강 작가는 그 누구보다 수상 가능성이 높았지만 아직 50대여서 좀 더 지나야 받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최근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여성작가 아니 에르노는 82세(2022년), 루이즈 글릭은 77세(2020년)였다. 

나는 밤 9시 뉴스를 통해 노벨문학상 소식을 접했다. 심각한 얼굴로 정치나 경제 소식을 전하던 앵커가 미소를 띠고 수상 소식을 전할 때 나도 모르게 “왁!” 하고 소리 질렀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유달리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내가 책을 좋아해서겠지만 매번 언론에서 비중있게 소개했기 때문이리라. ‘노벨문학상은 외국 사람만 받는 거구나’라고 생각하며 자랐는데 드디어 그 상이 우리에게 도달했다.

내가 매주 연재하는 서평 코너에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헤르만 헤세 《데미안》, 윌리엄 골딩 《파리대왕》, 도리스 레싱 《다섯째 아이》 등을 소개하면서도 노벨문학상은 남의 나라 일인 줄만 알았다. 이제 우리나라 일이 되었으니 바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에 대한 서평을 써서 신문사로 보냈다. 한강 작가가 자신의 작품 중에 최신간을 먼저 읽기 바란다고 해서 선택한 것이다.

상전벽해(桑田碧海)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꼽고 싶다. 해외에서 교포들을 만나면 한결같이 “한국 갈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한다. 특히 2000년 전에 다녀간 사람들은 거의 공포를 느낄 정도의 충격을 받는다고들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외형이 휙휙 바뀐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외형 을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이 뿜는 문화의 수준도 상전벽해가 아닐 수없다. 

클래식 음악 분야는 오래 전부터 세계 최고의 인재가 배출되어 왔지만 대중문화가 세계적으로 올라선 건 얼마되지 않는다. 아카데미상 감독상과 작품상에 이어 K팝이 세계를 휩쓸고 있다. ‘넘사벽’이었던 ‘빌보드 핫100’을 우리나라 아티스트가 수시로 점령하는 중이다. 넷플릭스 최상위권에 한국 드라마와 비드라마가 너무 많아 셀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이런 질주 속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오자 온 국민이 “올 것이 왔다”며 환호했다.

이문열 작가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노벨 문학상을 “세계 문학에 진입을 공식화하는 것일 뿐 아니라 ‘문학의 고급화’를 상징하는 봉우리 같은 것”이라고 평하며 한강 작가의 수상에 대해 “우리 언어로 창작된 우리 문학이 세계문학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겁니다”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일본과 중국이 받았는데 우리나라에 아직 노벨문학상 작가가 없다는 점이 아쉬웠다. 이제 우리나라도 노벨문학상 작가를 배출했으니 일본의 2명을 속히 넘어서길 기대한다. 중국도 현재 1명이 수상했다. 일본 3명, 중국 2명이라는 통계도 나오는데 가즈오 이시구로는 영국 국적, 가오싱젠은 프랑스 국적을 갖고 있다. 

3년간 하락하던 문학도서 판매량이 올 1~9월에 다시 올랐고, 500쪽 넘는 고전문학의 판매도 늘었다는 뉴스 끝에 노벨문학상 소식이 들려와서 더욱 반갑다. 올해 세계문학 판매량 1~5위는 헤르만 헤세 《데미안》,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조지 오웰 《1984》,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알베르 카뮈 《이방인》이 차지했다. 이 작가들 가운데 헤르만 헤세와 알베르 카뮈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들려오자마자 한강 작가의 책이 팔려나가기 시작했고 엿새 만에 100만부를 넘어섰다. 예스24와 교보문고는 분당 136권이 팔려나갔다는 통계를 내기도 했고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1위부터 19위까지 한강 작가의 작품이 차지했다. 

100만부가 엿새 만에 팔리다니, 대한민국 국민이 ‘노벨문학상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얼마나 한강 작가를 축하해주고 싶은지’가 숫자로 증명되었다. 몇 초 만에 도파민이 분출하는 숏츠가 난무한 세상에서 한 줄 한 줄 의미를 담은 섬세한 문장을 마음에 새겨야 안을 수 있는 한강 작가의 소설을 많은 사람이 읽게 되었다는 사실이 의미있다.

책을 읽지 않아 문해력이 떨어지는 청소년들의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자주 들려오고 있다. 심지어 작사를 한다는 래퍼가 ‘사흘’을 ‘4일’로 표기했다는 기사를 보고 한숨을 푹푹 쉬었던 기억이 난다. 부디 한강 작가의 소설에 머물지 말고 더 많은 문학작품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나의 신간 출간을 축하하며 전화한 사람 중에 한강 작가의 작품에 대해 '역사' 운운하며 나의 의견을 묻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한강 작가는 기자가 아니라 작가"라고 딱 잘라 말했다. 작가는 자신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창작'하는 사람 아닌가. 분통을 터트리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우려스러웠으면 한강 작가가 2016년 맨부커 국제상을 받을 때 나섰어야지"라고 말했다. 그때부터 한강 작가는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내놓는 소설마다 유수의 상을 받는 빌드업 끝에 노벨문학상을 만난 거니까.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곳에 도달한 사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침에 출판 마케팅을 하는 후배가 전화해서 《나의 로스앤젤레스》 출간을 축하하며 “지금 여러모로 조짐이 좋으니 열심히 쓰라”고 격려해주었다. 노벨문학상도 만만하고, 아카데미상도 만만해진 세상에서 청년들뿐만 아니라 장년들, 노년들도 꿈을 크게 키우며 책을 벗 삼길 기대하는 마음이다. [이근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