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⑩내남편 이승만] 돌아온 이화장에서 밤낮 민족의 살길 위해 기도

강석을 양자 삼고 좋아했으나 자결 소식에 실어증에 영어까지 잊어버리다

2024-03-27     이근미 작가

어느 날 경무대에서 일하던 우부인이라는 여인이 안방을 청소하면서 ‘개골개골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하면서 무심코 흥얼거리자 이 대통령이 듣고 “그 복 많은 개구리는 팔자도 좋구먼”하고 말해 경무대 식구들이 무안해 한 적도 있었다.
 
이 대통령은 경무대에서 비서들에게 “내가 외국 부인을 맞은 것이 여러분에게 미안한 느낌이 들 때가 많아. 하지만 해외에서 독립운동하며 돈 없이 고생할 적에 나를 잘 보살펴 주고 도와준 사람이야. 저 사람도 우리 못지않게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있어. 너무 멀리 시집온 저 사람이 안됐다는 생각이 들고 불쌍해. 모르는 것이 많으니 잘 좀 도와줘. 슬하에 자식이 없으니 쓸쓸하고 외로울 거야”라고 당부했다.
 
그런가 하면 전쟁 중에 아내에게 “지금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한국 장병들은 모두가 우리의 아들들이야. 당신은 걱정해야 할 아들들이 많아”하고 말하기도 했다.
 
프란체스카는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해 자신의 저서에서 이렇게 피력했다.
 
<좋은 것이 있으면 동포에게 다 줘버리고 늘 주고 싶어하는 대통령과 달리 나는 대통령에게 필요하거나 우리 살림에 긴요한 것은 간직하고 싶어하며 무척 아끼는 편이라서 대통령의 뜻대로 모든 것을 다 내줄 수는 없었다. 호주머니는 항상 비어있고 빈 주먹을 쥐고 있으면서도 자기 가족과 자기 걱정을 할 줄 모르는 대통령은 아내라는 부양가족 하나가 생긴 결혼 후에도 마찬가지였던, 어느 면으로는 한심스런 가장이었다. 그러한 대통령에게 가족이 아내 한 사람이라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고 슬하에 자손을 못 둔 내가 남몰래 자위했던 때가 있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그러던 중 이기붕 씨의 아들 강석을 양자로 맞은 후에 집안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대통령은 맛있는 음식이 생기면 “그 애가 오면 함께 먹을 테니 아껴두라”고 말할 정도로 양아들을 사랑했다. 프란체스카는 《대통령의 건강》에서 강석과 관련된 부분을 이렇게 썼다.
 
<강석이 집에 들르면 식탁에서도 이것저것 권해서 잘 먹는 것을 보면 무척 기뻐하고 대견해 했다. 그 애가 현관문에 들어서면 반기면서 빨리 먹을 것을 챙겨오라고 재촉하거나 어쩌다가 목욕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 등을 밀어주겠다면서 목욕탕 문을 두드리며 장난을 하기도 했다. 강석이가 양자로 왔을 때 침실 옆방을 내주면서 떨어진 다다미쪽을 대통령이 손수 수리를 했고 감기가 들까 봐 문풍지를 부지런히 발라주었다.>
 
경무대 내실에서 일했던 방재옥 씨는 강석이가 깍듯하고 반듯한 청년이었다며 ‘귀하신 몸’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경무대 이층의 낡고 초라한 방에서 지냈다고 일러주었다. 겨울에는 이 대통령이 손수 창호지를 오려서 문풍지를 발라주었지만 돈이 든다며 도배도 안 해주고 침대나 가구도 사주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을 쏟았던 아들이 자결하고 자유당 정권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아들의 자결 소식은 프란체스카가 그토록 지키려고 애썼던 대통령의 건강을 영원히 빼앗아 가고 말았다. 이 대통령은 아들의 자결 소식을 접하고 실어증까지 겹쳐 유창한 영어를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대통령직을 사임해야겠다는 결심이 이미 서 있었을 때 그토록 사랑했던 양자 강석이 경무대 안에서 자기 권총으로 부모와 동생을 쏘고 함께 자결했다는 비보를 들었을 때 노인의 슬픔과 충격이 너무나 깊었다.
 
자살 소식을 듣고 이 대통령은 심한 안면경련을 일으키며 눈이 충혈되더니 “이 불쌍한 늙은이를 버리고 죽다니”라며 비통해 하면서 “아들 하나 제대로 못 지키는 주제에 살아서 무엇 하나”하며 한탄했다. 주위에 있던 경호원에게 프란체스카가 “젊은 애가 권총을 가지고 다니면 잘 감시해야지 무엇들을 했느냐”고 나무라자 이 대통령은 “아들 하나 못 지킨 여편네가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꾸중했다.
 
프란체스카는 대통령이 하야 성명을 발표한 뒤 이화장까지 걸어가겠다고 하자 경황 중에도 대통령이 경무대 뒷산을 산책할 때 신던 헌신발을 신게 했다. 그리고 주방으로 내려가 대통령의 수저와 젓가락, 그리고 아침마다 식탁에서 읽던 성경과 반쯤 남은 작은 찻병을 핸드백에 넣고 따라나섰다.
 
걸어서 이화장까지 가려고 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이 대통령은 하야를 담담히 받아들였다. 이화장 생활은 경무대 생활에 비해 시간적으로 좀더 여유가 있어 자유로웠고 경무대의 낡은 다다미방 침실에 비해 온돌방의 아늑함이 대통령의 마음을 위안해 주는 것 같았다. 이화장에 다시 돌아온 이 대통령은 밤중이나 새벽이나 민족의 살길을 밝혀달라고 기도했다.(계속) [이근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