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진 칼럼] 브랜드보다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2년 전 40대 후반의 이부장이 퇴사 후 직장을 찾는다고 알려왔다. 이부장이 거쳐온 산업이 희귀 분야인 데다 경력이 20년이 넘어 이직 할 만한 회사가 많지 않았다.
다행히 국내 기업에 적합한 자리가 있어 이부장에게 소개했고, 고민해보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내가 제안한 회사는 기업 규모나 브랜드면에서 이부장이 근무했던 곳에 비해 약하지만 속은 튼실했다. 연봉을 높여 임원자리로 가는 데다 워라밸 실현도 가능한 곳이었다.
며칠 후 이부장은 내가 소개한 회사가 그동안 재직했던 회사에 비해 규모나 브랜드가 떨어져 본인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거절했다. 마켓 상황과 커리어 패스를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설명했지만, “저도 제가 갈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다는 걸 알지만,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네요. 그런 회사에 갈 바에는 전 직장으로 돌아가는 게 낫죠. 거기서도 다시 오라고 난리예요” 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근무했던 회사 수준에 걸맞는 곳으로 다시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치 맡겨 놓은 걸 내놓으라는 태도에 기분이 상한 나는 ‘능력 있는 사람이니 알아서 하겠지’ 하고 잊어버렸다.
2년이 지난 어느 날, 이부장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지금까지 퇴직금으로 버티며 적절한 회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며, 곧 돈이 바닥날 것 같아 직장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 제안한 수준의 회사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 사이 50대가 된 이 부장은 ‘내가 다니는 회사’가 ‘나를 대신하는 이름표’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마치 ‘나를 돋보이게 해줄 명품 옷을 구해 내가 빛날 수 있도록 치장해 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능력이 있으니 원하는 규모와 브랜드를 갖춘 회사를 찾으실 겁니다”라며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런가하면 50대 초반에 대기업에서 퇴직한 윤이사는 퇴직 1년 만에 작은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며칠 전, 티타임을 갖자며 방문한 윤이사는 벌써 입사 2년차가 되었다며 “문화나 연봉, 복리후생, 맨파워 측면에서 대기업에 비해 턱 없이 부족하지만, 이곳에서는 제가 꽤나 쓸모있는 사람 대접을 받고 있어 감사히 다니고 있어요” 라고 했다.
'내가 다니는 회사의 브랜드'와 '내가 일을 하고 있는 것' 가운데 어떤 게 중요할까?
사람에 따라 가치관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큰 조직에서 충분히 경험했다면 인생 후반 커리어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가치를 발휘하는 게 어떨까. 새롭게 시작하면 배움과 보람, 기쁨이 있을 것이다.
과거 당신이 어떤 회사에 근무했는지 보다 현재 당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당신을 성장시키고 빛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의 생각 뿐이라는 걸 기억하자!
김소진
뉴욕대학교(NYU) 인사관리 석사. 서울시·과학기술부·경찰청 등 공공기관 채용 면접관으로 활동 중이며, KBS ‘스카우트’, tvN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심사위원으로 출연했다. 저서로는 《성공하는 남자의 디테일》, 《성공하는 남자의 디테일 두 번째 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