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칼럼] 패션 산업, 그들만의 '팬데믹' 극복 방식
천연두는 유일하게 종식된 질병이다. 1949년 전 세계 발병 건수는 63만 2,000건이었지만, 1979년 이후 감염은 보고되지 않았다. 2020년 3월 11일, 세계보건기구(WHO)는 역대 3번째 감염병 최고 경보 단계인 팬데믹을 선언했다. 종식된 천연두의 사례처럼 COVID-19 또한 언젠간 종식되리라 믿는다.
팬데믹 시대. 사람들은 일하고 소비하겠지만, 이전처럼 많이 일하고 소비하지는 못할 것이다. 트렌드가 어쩌고, 멋이 어쩌고, 핏이 어쩌고는 우선순위 뒷전에 놓일 수밖에 없는 시국이다. 패션 칼럼을 쓴다고 주의 깊게 읽을 이는 많지 않을 것이 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영유할 수 있게 하는 필수재가 있고, 그 산업의 업에 삶을 걸고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 패션에 대해 글을 쓰는 이유겠다.
상점은 문을 닫았고, 패션쇼는 취소됐다. 의류 산업 또한 타격이 심각하다. 의류를 생산하는 글로벌 공급 체인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한 상황이지만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시대에 도움이 될 것을 자처했다. 기부와 마스크, 의료 가운 생산으로 말이다.
루이뷔통, 셀린느 등을 보유한 프랑스 명품 브랜드 그룹 LVMH는 마스크와 손 소독제 생산에 나섰다. 디올은 프랑스 르동에 있는 베이비 디올 아틀리에에서 수작업으로 마스크를 만들었다. 구찌와 생 로랑, 발렌시아가를 보유하고 있는 케어링 그룹 역시 프랑스 당국과 협의를 통해 외과용 마스크 3백만 개를 기부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스크와 손 소독제뿐만 아니라 의료진을 위한 도움의 손길 또한 인상적이다. 프라다는 의료진을 위해 8만 벌의 의료용 방호복과 마스크 11만 개를 제작하기로 결정했고, 조르지오 아르마니, 버버리는 의류 생산 공장을 의료용 가운 생산 장소로 전환했다. 이밖에도 자라, H&M 등 글로벌 SPA 패션업체들도 마스크 생산에 동참하고 있다.
패션 산업 리더다운 그들만의 방식으로 팬데믹 시대 극복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COVID-19 대처 모범 사례국으로 손꼽히는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아쉽게도 국내 패션 산업 리더 중 이와 같은 굵직한 소식은 찾기 어렵다. 마스크 기부와 같은 단발적 지원은 있으나, 자체 보유하고 있는 생산시설을 통한 궁극적인 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는 패션 기업은 전무하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육성해야 하는 국내 패션 산업에서 이와 같은 행보는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생산 기반 자체가 국내 기반이 아닌 해외 기반으로 움직이고 있는 점 때문이겠다. 하지만 위기일수록 그 진정성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돋보이기에 글을 빌어 아쉬움을 전해 본다.
소비는 위축되고 의류 산업 또한 당분간 어려운 시기를 맞이할 것이 자명하다. 아쉬움은 아쉬움이지만, 의류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 또한 건강히 이 시기를 극복하고 산업이 정상화되길 바란다. 그리고 글로벌 시장에서 우뚝 성장하여 혹시 모를 이러한 시기에 당당하게 지원의 손길을 뻗을 수 있는 패션 기업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글: 김현호 패션 크리에이터&MD]